유권자는 합리적인가
상태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권자는 합리적인가
  • 2020.03.07 05:00
선거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이며 핵심적인 것으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중 하나이나, 다수의 사회심리학 연구들은 사람들의 투표 행위가 얼굴과 같은 피상적인 정보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이며 핵심적인 것으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중 하나이다. 또한, 투표 행위는 나이, 성별 및 사회 계층 등의 차이를 가리지 않고,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이처럼 중요한 의사결정임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사회심리학 연구들은 사람들의 투표 행위가 얼굴과 같은 피상적인 정보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17년 실시된 제19대 대통령 선거 포스터다. 누가 유능해보이는가?
지난 2017년 실시된 제19대 대통령 선거 포스터다. 인상이 어떤 효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하는가?

서구문화권의 선거 당선자 예측: 유능감이 얼굴에 드러난다면

Lavater(1775)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관상학을 믿는지와 관계없이 거의 모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의 얼굴이 주는 정보에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즉, 우리는 일상에서 낯선 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습관적으로 그 사람의 특성을 파악하려 하며, 타인의 얼굴에 드러난 단서들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얼굴을 통한 추론과 판단은 사람들의 투표 행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Todorov와 동료들(2005)은 참가자들에게 낯선 두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고 더 유능해 보이는 사람을 선택하도록 지시하였다. 여기서 동시에 제시된 두 사람은 과거 미국에서 진행된 상/하원 선거에서 실제로 경쟁했던 두 후보자, 즉 당선인과 낙선인이었다. 참가자들은 이에 대한 정보를 전혀 제공받지 않은 상태에서 화면 좌우에 나타난 낯선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보고 누가 더 유능해 보이는지 응답하였다. 그 결과, 참가자들에게 더 유능해 보인다고 선택된 사람이 실제 선거의 당선자일 확률이 (낙선자일 확률보다) 더 높았다. 구체적으로, 더 유능해 보인다고 평가받은 후보자가 미국 상원의원 당선자일 확률은 71.6%였으며, 하원의원 당선자일 확률이 66.8%로 나타나 모두 통계적으로 우연 수준(50%) 이상이었다.

동양문화권의 선거 당선자 예측: 사회성이 얼굴에 드러난다면

그러나 Na와 동료들(2015)은 서구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검증되었던, 얼굴로부터 지각된 유능함이 실제 선거를 예측한다는 결과가 '상호의존적 자기개념'이 강한 일부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확인하였다. 구체적으로, 이 연구자들은 미국과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미국과 한국 선거에 출마해 서로 경쟁했던 후보자들의 얼굴 사진을 보여준 다음, 두 사람 중 더 유능해 보이는 사람을 선택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얼굴에서 유추할 수 있는 유능함이 미국 선거 결과를 예측한 반면 한국 선거 결과는 예측하지 못하였다. 즉, 미국과 한국 학생들에게 유능하다고 여겨진 얼굴이 미국 선거에서는 당선자일 확률이 (낙선자일 확률보다) 높았던 반면, 한국 선거에서는 당선자일 확률과 낙선자일 확률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결과는 얼굴로부터 유추되는 유능함이 한국에서는 선거와 같은 사회적 의사결정과 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유능함처럼 개인의 능력과 관련된 속성이 아닌, 친화성처럼 사회적 능력과 관련된 속성을 유추하게 하면 어떨까? 동아시아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적 속성보다는 사회적 속성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략의 유추가 가능할 것이다. 즉, 상호의존성이 강조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의 능력을 보여주는 속성보다는 사회적 관계와 관련된 능력이 선거와 같은 사회적 판단을 더 잘 예측할 가능성이 있는 것다.

나진경과 허진(2016)은 이러한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해 한국 참가자들에게 함께 제시되는 두 명의 얼굴 중 ‘똑똑해 보이는 사람(유능함)’과 ‘친구가 많아 보이는 사람(인간관계)’을 선택하도록 하였다. 한 쌍으로 제시된 두 명의 얼굴은 실제 선거에서 경쟁했던 두 명의 후보자였으며, 후보자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실험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얼굴에서 유추된 사회적 관계는 선거 결과를 유의하게 예측한 반면, 얼굴에서 유추된 유능함은 그렇지 못하였다.

구체적으로, 친구가 많아 보일 것 같은 얼굴의 후보자가 그렇지 않은 후보자보다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우연 수준보다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관찰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주변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 같은 상호의존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얼굴에 드러나는 사회관계적 속성이, 투표 행위와 같은 사회적 의사결정과 판단에 더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종합하자면, 짧은 시간 내에 얼굴로부터 유추된 후보자의 속성은 유권자들의 실제 투표 행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불가피해보이는, 유권자의 비합리적 선택

그렇다면 정말 사람들은 투표와 같이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후보자의 얼굴과 같은 피상적인 정보에 의존하여 판단을 내릴까? 답은 '그럴 수도 있다' 이다. 2018년 6월 13일 치러진 지방선거의 경우 교육감,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지역구 광역의원, 비례대표 광역의원, 지역구 기초의원, 비례대표 기초위원을 선출하는 7개의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었다(단 세종은 4개, 제주는 5개의 선거가 치러졌다). 이는 유권자가 하루에 최대 총 7번의 투표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독 후보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최소 둘 이상의 후보들이 각 분야의 선거에 출마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최소 10여 명 이상의 후보자들의 이력과 공약을 비교하고 평가해야 한다. 이로 인해 많은 유권자들은 모든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지 못한 채 투표에 참여하게 된다. 그 결과, 유권자들은 때때로 합리적 사고를 통해 어떤 후보자에게 투표할지 결정하기보다는 후보자의 소속 정당, 성별 및 외모와 같은 피상적인 정보에 의존하여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특히,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정당이 없는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이라면 후보자의 얼굴이 주는 인상을 바탕으로 투표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mind

 

<참고문헌>

나진경, 허진 (2016). 얼굴에서 유추할 수 있는 유능함과 사회적 관계가 한국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 30, 37-49.

Na, J., Kim, S., Oh, H., Choi, I., & O'Toole, A. (2015). Competence judgments based on facial appearance are better predictors of American elections than of Korean elections. Psychological Science, 26, 1107-1113.

Todorov, A., Mandisodza, A. N., Goren, A., & Hall, C. C. (2005). Inferences of competence from faces predict election outcomes. Science, 308, 1623-1626.

 

홍승범 서강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