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를 해야 하는 진짜 이유
상태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투표를 해야 하는 진짜 이유
  • 2020.04.15 14:14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날이다. 나의 한 표로 인해 바뀌는 것은 무엇일까? 한 표가 행사하는 실질적인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미 투표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 하나쯤이야 투표장에 가는 대신 집에서 편히 쉬어도 되는 건 아닐까?

표 한 장의 값어치

다가오는 수요일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날이다. 선거철에는 어김없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 달라는 메세지를 여기저기서 듣게 된다. 텔레비전에서는 펭수가 투표를 독려하고 SNS에는 사전투표일부터 다른 이들의 참여를 권하는 투표 인증샷들이 올라온다. 실제로 우리가 투표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한 표로 인해 바뀌는 것은 무엇일까? 한 표가 행사하는 실질적인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미 투표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나 하나쯤이야 투표장에 가는 대신 집에서 편히 쉬어도 되는 건 아닐까?

상식 선에서 따져보았을 때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가 될 수 있다. 물론 투표를 하는 것이야말로 시민의 의무를 다하는 일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투표장에 가는 수고에 비해 그 편익은 크지 않다. 기본적으로 투표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 확률을 높이기 위한 행위이다. 하지만 따져보면 나의 한 표로 인해 어떤 후보의 당락이 결정될 일은 거의 없다.

박빙의 승부였던 18대 대선을 예로 보자. 당시 박근혜 후보 51.6%, 문재인 후보 48%의 득표율로 3.6%라는 근소한 차이로 박근혜 후보가 당선이 되었지만, 표차를 따져보면 108만0496표의 차이가 났고 이 수는 절대적으로 보았을 때 작은 수가 아니다. 보다 아슬아슬했던 승부는 2000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있었다. 이 때 조지 W. 부시는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537표 차로 승리를 거두었는데 그 결과 전체 선거에서 앨 고어를 이기면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앨 고어를 지지하지만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던 플로리다 주민들은 후회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 한두 명이 다른 선택(투표에 참여하는 선택)을 했을지언정 선거의 결과는 그대로였을 것이다. 아무리 경합이 치열해도 한 표의 차이로 당선이 결정될 확률은 거의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지난 100년 간 치뤄진 미국 상하원 의원 선거 1만6577건 중 무승부가 나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화창한 봄 날 어디론가 훌쩍 떠나거나 푹 쉬고 싶은 유혹을 떨치고 왜 투표소에 가야 하는 걸까? 요즘의 세태를 보면 우리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파되는 것은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나 정서 상태 또한 주변인들에게 확산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 전이라고 부른다. 전염성을 보이는 또 다른 예는 바로 정치적 행동이다. 투표를 해야 하는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신, 투표를 전염시키고 계시군요!

사회적 연결망social network을 연구해 온 하버드 대학의 크리스테키스Christakis와 파울러Fowler 교수는 그들의 저서에서 한 사람이 투표했을 때 그와 정치적인 대화를 나누는 지인이 투표할 확률은 약 15% 높아진다고 밝히고 있다Christakis & Fowler, 2011. 이 영향력은 직접적인 관계에서 그치지 않고 지인의 지인으로까지 퍼져나갔다고 한다. 물론 우리는 민감한 문제인 정치에 대한 대화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지는 않는다. 한 조사 결과에서는 70%의 사람들이 5명 미만의 사람들과 정치적 대화를 나눈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종합적으로 계산해보면 한 사람이 투표를 하는 행동은 평균적으로는 3명, 많게는 100명의 다른 이들이 투표를 할 확률을 높였다. 즉 우리가 행사하는 한 표는 한 표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투표를 해야 할 결정적인 이유는 되지 않는다. 만약 나와 정치적인 대화를 나누는 지인들이 내가 지지하는 후보와는 반대 진영에 있는 후보를 지지한다면? 오히려 나의 선거 참여가 이들의 참여를 독려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자. 대체적으로 우리는 나와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정치 이야기를 나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마 정치 성향이 다른 지인과 정치 이야기를 하다 토론을 그만 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의 정치 토론은 싸움으로 번지거나 한 명이 자리를 뜨거나 혹은 그저 둘 다가 침묵해버리는 식으로 끝나기 쉽다. 실제로 정치적 행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21대 총선, 투표하셨나요?

I (make you) vote!

종합해 보면 나의 한 표는 평소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정치 이야기를 나누는 지인들의 선거 참여를 독려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 지인들과 비슷한 생각을 지니는(결국 나와도 비슷한 성향을 지닐 확률이 높은) 그의 지인들이 투표소에 갈 확률을 높인다. 이렇게 투표를 한 사람은 또다시 그 지인과, 지인의 지인들이 선거에 참여할 확률을 높인다. 결국 나의 한 표는 한 표가 아니다. 정치적 행동의 파급효과 덕에 우리는 선거에 참여 혹은 불참함으로써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당락에 무시 못 할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다.

덧, 한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것은 일어날 확률이 희박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미국보다 짧은 민주주의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기도 하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는 충남청양구의원 가 선거구의 당락이 한 표 차로 갈린 바 있다고 하니, 한 표로 당락이 뒤집히는 선거는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그 한 표가 나의 한 표일 수도 있지 않을까? mind

    <참고문헌>

  • 니컬러스 크리스태키스, 제임스 파울러 저, 이충호 역(2010) 《행복은 전염된다(하버드대가 의학과 과학으로 증명해낸 인간관계의 비밀》 김영사
김여람 ‘민사고 행복 수업’ 저자 사회 및 성격심리학 MA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지난 4년간 심리학 교사로 재직하였다. 행복을 주제로 하는 긍정심리학, AP심리학(심리학개론), 선택교과심리학, 사회심리세미나, 심리학논문작성 등의 수업을 진행하였으며 진학상담부 상담교사로서 아이들과 많은 고민을 나눴다. 저서로는 '민사고 행복 수업(2019)', '2015년 개정 교육과정 심리학 교과서(2020)' 등이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과 심리학을 이중전공한 후 동 대학원에서 사회 및 성격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