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 배우는 나이듦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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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서 배우는 나이듦의 지혜
  • 2023.07.28 15:33
배움은 반드시 교실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평생발달과 사이버 심리학 박사가 게임을 통해서 느낀 나이듦의 지혜를 이야기 해 본다.

우연이 필연이 되는 인생

인생은 참으로 신비로워서 시작점에 서 있을 때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 지 알 수 없지만,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면 마치 이미 예정되었던 길을 따라왔던 것이 아닌가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인생에서 만난 수많은 우연이 마치 필연이자 운명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난 현충일에는 오랜만에 돌아가신 지도교수님 산소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26년 전 겨울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던 그 때의 교수님보다 저는 이제 나이를 한 살 더 먹은 중년이 되었습니다. 성인발달 과정과 나이듦의 신비 그리고 인간 행동의 변화를 이해하고 싶은 호기심과 열망에 이끌려 박사 과정에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를 기다리던 현실은 갑작스러운 지도교수님의 상실과 연구 중단이었습니다.

그 후 새로 부임하신 지도교수님 덕분에 저는 사이버 공간, 디지털 세상, 게임 문화에 눈 뜨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박사 학위를 마친 제자와 함께 중노년층 게임 플레이어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는 연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20대에 멈춰 섰던 노년 심리 연구를 50대가 된 제가 게임학과 융합해 다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그 때보다 지금이 이 주제 연구를 더 갖춰진 마음으로 잘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느 게임이 주는 질문, '삶의 의미'

「고로고아」는 삶의 숨은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퍼즐 게임입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제이슨 로버츠Jason Roberts가 6년에 걸쳐 자기 손으로 한 장씩 그려 나간 그림을 모아 만들었습니다. 삶의 여정은 누구나 자기만의 숨은 비밀을 찾아가는 하나의 큰 수수께끼입니다. 인간의 기억은 순간을 이루는 작은 경험의 조각이 모였다 흩어지고 또 다시 짜여 나가면서, 돌아보는 시점에 따라 다른 의미를 담는 변화하는 이야기입니다.

2017년 개발된 내러티브 퍼즐게임인 「고로고아」. 4개의 칸 위에 그림을 조절하면서 그림 사이에 숨겨진 내러티브를 찾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매 순간 파편화된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을 동시에 마주한다.
2017년 개발된 내러티브 퍼즐게임인 「고로고아」. 4개의 칸 위에 그림을 조절하면서 그림 사이에 숨겨진 내러티브를 찾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매 순간 파편화된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을 동시에 마주한다.

「고로고아」의 그림 이야기 퍼즐은 다양한 기억의 조각이 서로 교차하면서 우연히 연결되었다가 흩어지고, 그것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숨겨진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마음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이 게임은 인간 경험의 재창조 과정이 가진 신비로움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시적 은유를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5가지 색깔의 과일을 차례로 모으는 과제를 해결하고 미지의 용을 찾아야 합니다.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는 젊은이가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뒤로 흘러갈수록 한 노인이 삶을 되돌아보며 젊은 시절의 자신과 다시 만나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인생 회고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게임 안의 인생 이야기

그림 속의 한 부분은 다시 다음 그림의 전체로 이어지고, 젊은 주인공은 노인이 된 주인공과 교차하며 만납니다. 그림 속의 주인공은 직접 행동을 하는 행위자이면서 동시에 그 행동을 바라보는 관찰자입니다. 현실과 환상, 의식과 무의식, 미지와 기지의 세계라는 상반된 속성이 게임 속에서 계속 교차하면서 연결되었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합니다.

5가지 색깔의 과일은 인생의 단계를 상징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게임을 구성하는 하나의 활동 단위가 됩니다. 각기 다른 색깔은 각기 다른 가치를 담고 있는데 빨강은 아동기이자 희생의 가치를, 녹색은 청소년기이자 구원을, 노랑은 청년기이자 추구를, 파랑은 중년기이자 의례를, 그리고 마지막 보라는 노년기의 창조를 뜻합니다. 인생의 각 시기마다 겪는 삶의 도전과 성취, 상실과 극복 그리고 절망과 환희의 양극성을 표현합니다.

게임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노인은 하늘을 우러르며 지혜의 용이 가진 눈이 상징하는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어 보는 통찰의 힘과 하나가 됩니다. 한 평생에 걸쳐 그렇게 그리워하고 애타게 찾아 헤매던 바로 그 용을 그렇게 만나는 것입니다.

나이듦의 지혜는 철학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에게 열려 있고, 한평생 반복되는 배움의 결과다. 렘브란트의 「명상 중인 철학자」, 1606년, 패널에 유채.
나이듦의 지혜는 철학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에게 열려 있고, 한평생 반복되는 배움의 결과다. 렘브란트의 「명상 중인 철학자」, 1606년, 패널에 유채.

절망을 넘어서는 삶의 통합

이러한 합일의 경험은 어떤 위대한 사람만이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숨은 희망을 발견하고, 다리를 다쳐 몸이 불편해도 구도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나와 타인을 위해 작은 촛불을 켤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삶을 지키며 오롯이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는 깨달음의 기회임을 「고로고아」는 말없이 그려 주고 있습니다.

전생애 발달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인생의 8단계 이론을 제시하면서 가장 마지막 단계로 ‘자아통합 대(對) 절망’이라는 양극성을 설명했습니다. 에릭슨이 살았던 시대에 비하면 이제는 평균 수명이 더 길어졌습니다. 인생이 단계로 설명할 만큼 각 연령 시기별로 명확하게 구분되기 보다 나선형 순환 과정에 가깝다는 로버트 키건(Robert Kegan)의 후속 이론도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삶의 경험 중에서 어떤 한 측면을 이해하는데 이 개념은 여전히 유효해 보입니다.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자기의 부족함과 한계에 대해서, 인간의 유한성과 사회적 제약에 대해 단 한번도 절망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오히려 그러한 절망에도 불구하고 그만하면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내 인생에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자기에게 나지막이 속삭여 줄 수 있다면 그는 자기의 삶을 통합하는 지혜의 빛을 발견한 것입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나이듦의 지혜

게임에 비추어 잠시 생각해 보니 저는 지난 현충일에 돌아가신 지도교수님만 만나고 돌아온 것이 아닌가 봅니다. 갑작스러운 상실과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깊이 절망하던 20대의 저를 함께 만나고 돌아온 것입니다. 이제는 드디어 상실의 고통을 담담히 마주하고 젊은 날의 제 모습을 스스로 안아줄 수 있을 만큼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봅니다.

삶에서 예고없이 찾아오는 무수한 절망의 순간에서 벗어나 자기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듦의 지혜는 특별한 사람들만 누리는 희귀한 선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삶을 잠시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그 뜻을 되새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모두에게 열려 있고 한평생 반복되는 배움의 기회일 것입니다. mind

※ 본 기사는 교수신문과 공동 기획으로 진행하는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의 여섯 번째 주제, '웰에이징 시대'에 관한 기사입니다. 해당글은 교수신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도영임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발달 심리학 & 사이버 심리학 ph. D
연세대 심리학과에서 온라인 게임 이용자의 자기 인식과 자기 변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카이스트 Serious Game Lab 선임연구원을 거쳐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Games and Life Lab을 이끌며 디지털 게임 경험과 삶의 경험이 연계되며 발생하는 플레이어의 행동 및 인식 변화와 사회 문화 현상을 전생애 발달 심리학적 접근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최근에는 라이프 미디어로 미래 게임의 진화를 상상하면서 ‘게임의 예술적 경험에 대한 플레이어 선호 유형’, ‘게임과 메타버스의 접근성과 포용성’, 그리고 ‘게임과 메타버스의 지속 가능성과 확장성’을 탐구하고 있다. 대표 공저서로 『포스트 메타버스』(2022), 공역서로 『디지털 시대의 청소년 읽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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