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겪는 노화, ‘마음의 준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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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겪는 노화, ‘마음의 준비’에 관하여
  • 2023.09.03 17:05
과거에 비해 노년기의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모두는 죽는다. 죽음을 맞이는 마음의 준비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죽음 직전까지 지켜야 하는 개인의 존엄은 왜 아직도 철저히 개인 스스로에게 강요되고 있는가? 공동체심리학자의 시각에서 마음의 준비를 이야기해본다.

나의 어머니는 12년 전 처음으로 암을 앓으셨다. 당시 66세, 그래도 기초 체력이 있으셨던 분이라, 종양부위를 절제해내고 그 자리에 피부이식도 해넣고, 나머지는 방사선으로 치료 과정을 거쳤다. 그 후 10년 간, 삶의 질에 중차대한 타협이 있었어도, 이동력과 의사소통 부분에서 아직 당당한 60대로, 우리들의 힘찬 어머니로 든든히 자리를 지키셨다.

그러다 코로나19 팬데믹 한중간인 2021년 여름에 두번째 암이 재발했다. 12년 전과 위치가 너무 유사하고, 어머니 연세 76세에 지난 10년 간 누적된 영양부족 및 골다공증 진행으로 이제 수술이 불가해졌다. 방사선을 해도 항암을 해도, 없어지라는 종양은 지독하게 살아남고, 몸만 더 망가지셨다. 항암부작용 시기에 낙상으로 인한 골절과 수술까지 겪으시고 나니 종전 체중의 절반이 되는 데에 2년이 채 못 걸렸다.

당신의 존엄을 지켜내신 어머니

12년 전, 혀에 자란 암을 제거하는 수술 직전에, “암을 조금 남겨놔도 좋으니 (노래할 수 있게) 성대는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농담 아닌 농담으로 의료진을 놀라게 하셨던 어머니께서 이제는, 턱에 구멍을 내고 입안으로까지 뻗친 종양 때문에 예/아니오 질문에 겨우 답하시는 상태가 되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데에도 한 시간이 걸리는 체력 상태이시다.

그런데도, 화장실 뒷정리를 하겠다는 나를 내쫓으시고 속옷가지들을 직접 손세탁하신다. 하루 24시간 중 20시간은 잠들어 있으시다가, 깨어있으신 4시간 동안 진통제와 유동식 영양보조제를 드시고 속옷세탁하신다. 낙상 시에 119 구급대 도움으로 응급실에 도착하셨을 때에도 대원들에게 “미안해요” 하시던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당신의 존엄을 손수 지켜내시고 있다. 나의 어머니는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시는 것일까.

어머니께서는 진즉에 연명치료에 대한 거부의사를 밝히셨었는데, 집에서 출혈이 반복되자 입원을 원하신다. 입 안팎으로 자라 이제는 호흡도 방해하는 지경에 이른 이 종양 덩어리를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싶어하신다. 외과적으로는 현재 가능하지 않은 접근이다. 그렇다면 어머니께서 거부하신 연명치료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철저하게 '신 앞에 선 단독자'를 경험하고 계실 어머니를 위한다면, 가족으로서의 나는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가.

 

죽음과 가까워진 노인을 위해서 우리는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까? 구스타프 클림트, 「죽음과 삶」, 캔버스에 오일.
죽음과 가까워진 노인을 위해서 우리는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까? 구스타프 클림트, 「죽음과 삶」, 캔버스에 오일.

삶의 포기와 의지의 공존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의학적 권고에 반하는 환자의 퇴원에 대한 의료진 및 가족을 살인죄 및 살인방조죄로 인정한 판례)과 2009년 김할머니 사건(평소 본인의 연명치료거부 의사에 근거한 가족의 요청으로 연명치료 중단을 인정한 판례)이 촉발제가 되어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었고, 2018년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되어 왔다.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으려면, 담당의사 및 전문의 1인이 동의하는 '사망에 임박한 상태'에서 환자 또는 가족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애미'가 자식한테 도움도 못 되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병실만 차지하는 말년은 싫다시던 어머니의 현재 기력 상태로 봐서는, 사망에 임박하였고 연명의료 거부의사가 이미 있으신 것 같다. 그런데 동시에 속옷을 손세탁하시는 그 고집이나 눈에 보이는 종양을 떼어내고 싶다시는 바램에서는 삶의 의지가 확인되는 것도 같다. 그럼 이 둘은 가족보호자의 상충되는 해석인가, 당사자의 존엄을 위한 본심인가. 우리의 '마음의 준비'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당신의 삶을 존경합니다!

노인들은 유언을 남기거나, 영정사진을 찍고 수의를 마련하고 장지를 미리 정해놓음으로써 당신의 마지막에 대해 준비를 하시기도 한다. 고맥락 문화high-context culture(의사소통의 많은 부분을 상황에 의존하는 문화)인 우리 문화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면 더 좋겠지만, 사실 말해도 잘 몰라주는 게 사람 마음 아닌가. 그러니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최선은, 공동체심리학에서 말하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면 어떨까.

미국의 장례식은 '인생 축하celebration of life'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를 장례 시점이 아닌, 살아계신 동안 해보는 것으로서 말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인생에 대해 '잘 사셨다'고 인정해드리고 치하하기. 좀 더 시간이 된다면 구술생애사적인 접근으로 자서전이나 사진첩같은 기록을 남기고 기념하기. 남겨진 시간동안 가족·지인과의 좋은 관계들 한번 더 기억하기. 

 

노화는 공동체 모두가 겪는 공동체의 일이다. 존엄을 지키며 늙어가는 것도 공동체가 함께 해야 한다. 그림=DALL·E2
노화는 공동체 모두가 겪는 공동체의 일이다. 존엄을 지키며 늙어가는 것도 공동체가 함께 해야 한다. 그림=DALL·E2

 

말하자면, 경험하는 자아experiencing self로서는 당신의 매순간에 영혼까지 갈아넣으셨으면서도, 기억하는 자아remembering self는 왜 그리도 후회가 많은지. 인생을 마감하는 시점에 스스로의 지나온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뿌듯해할 수 있는 내러티브narrative를 조력하는 데에 우리의 정성 조금 보태보면 어떨까.

부모님들이 무병장수하시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65세 이상 국민의 13% 이상이 암을 경험하고국가암정보센터, 2023 10%를 웃도는 숫자가 인지장애를 경험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중앙치매센터, 2023. 마음의 준비를 내 마음으로만 하지 말고, 부모님 세대의 기여를 인정하는 작업을, 할 수 있을 때 미루지 말고 해보기. '내리사랑'의 필연적이지만 불필요한 죄책감에 대해 자녀로서, 후속 세대로서 할 수 있는 보은을 단리simple interest보다는 복리compound interest로 접근하기. 굳이 임종 시점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노인의 존엄은 개인의 몫이 아니다.

우리 모두 죽는다. 운좋으면 동시대인의 평균연령 만큼은 늙는다. 우리의 노년이 우리 모두의 관심사가 되는 데에 다른 어떤 이유가 더 필요한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한 사회적 연결이 잘 되어 있을수록 노년이 건강하다는 연구들은 차고 넘친다. 최소한의 사회적 연결, 공공의 안전망, 살아온 인생에 대한 축하, 시설 신세 지지 않고 나 살던 데서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은 왜 여전히 개인의 몫인가. 약음기 한 다섯 개 끼우고 연주하는 현악기 소리 같은 노년이 내게도 온다면, 악장마다 치열한 카덴차같았을 내 삶을 마무리하는 마음의 준비를, 쓸쓸하게 혼자서 하지 않아도 되면,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호스피스 간호를 앞두고 있는 나의 어머니 윤두심 여사님 곁에서, 치열하게 살아오신 우리의 부모님들 삶을 찬미하며, 강인하게 끝까지 존엄을 지켜내시려는 당신들의 노력에 경탄하며, 우리들에게 희노애락의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주신 것에 감사하며 씁니다. mind

정안숙 드폴대 심리학과 교수 공동체심리학 ph. D
연세대학교에서 심리학·국어학 학사, 임상심리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교 시카고에서 공동체심리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현재 미국 드폴대학교(DePaul University) 심리학과에서 교수로 있다. 가족공동체가 외부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방식에 초점을 두고, 저소득가정 및 이민가정, 암·알츠하이머·루게릭 등 중증질환자 가족, 지속가능 노인케어를 위한 지역사회내 가족 지원체계 등을 연구하였다.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사회 내 사회적고립감 해결을 위한 연구를 주도하였고, 2023년 문체부의 연결사회를 위한 지역문화진흥 사업에 고문으로 참여하였다. 국립암센터 겸임연구원, 연세대학교 생명윤리위원회 외부위원, 한국심리학회 국제교류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국심리학회 공동체심리학 분과 SCRA(Society for Community Research and Action)의 2023-2025년 연구자상(Research Scholar) 및 드폴대학교 2023-2025년 건강문제 지역사회 연결 연구자상(Steans-Center for Community Health Equity Faculty Fellowship)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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