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흔적을 따라 함께 걷다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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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흔적을 따라 함께 걷다 II
  • 2020.01.11 11:00
지난 나의 글 '그의 흔적을 따라 함께 걷다'에 대한 내담자의 답글이다. 그는 다가오는 2월 부터 20~30대 여성 자살 사별자를 위한 자조모임을 이끈다.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매 순간 두렵고 힘들지만 그 만큼 자유롭고 가벼워진다며 또 한 번 용기를 냈다. 이 글이 다른 많은 자살 사별자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는 작은 바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그녀의 말을 함께 전한다.

애도 상담 일 년을 정리하며

집은 동생의 죽음 이후 1년이 되어가도록 그대로였다. 동생 방은 특히 그랬다. 아프면서 항상 누워 있었던 침대, 옷가지, 바르던 로션들과 읽다 만 부분을 표시해 둔 시집들이 죽기 전과 똑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동생이 문을 열고 뛰어내린 창문은 항상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었다. 엄마는 블라인드가 고장나서 올릴 수 없다고 했다. 엄마가 은행에서 볼 일이 있어 마지못해 집을 비우면 나는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을 꼼꼼히 살폈다. 어떻게 이 문을 열었을까, 얼마나 이 앞에 서 있었을까. 창문에 힌트가 남아있을까 싶었다. 빛이 들이치는 창에 바짝 붙어 사선으로 올려다보면 높은 곳에 찍힌 몇 개의 손자국이 보였다. 바닥까지 꾹 눌러 찍은 자국이다. 동생은 키가 크니까 손을 뻗어 창문에 기대면 저기 즈음에 손자국이 남을 것 같다. 뻗은 팔에 머리를 기대고 서 있었을까? 엄마가 돌아올 시간이 되면 얼른 블라인드를 내렸다. 블라인드는 계속 고장난 상태 그대로였다.

거실 창이 항상 닫혀 있으니까 숨이 막혔다. 학교에 갔다 집에 돌아오면 동굴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집은 적막하고 엄마는 닫힌 공간이 무서워서 방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거실에 이불을 펴 두고 자고 일어난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다가 약을 먹고 다시 잔다. 나는 집에 돌아오면 오늘은 강아지 산책을 했는지 요가를 다녀왔는지 물었다.

애도는 중노동이다

장례식장에서는 내내 “엄마, 아빠 대신 네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정신 차리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을까, 애도 상담을 찾았다. 처음에는 나보다 엄마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제발로 찾아갈 리 없으니 내가 먼저 다녀보고 권하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는 얼마 안 돼 엄마를 도우려는 그 마음조차도 나의 슬픔을 돌보지 못하게 막는 신경증적인 상태라는 걸 알게 됐다. 지금도 자살 사별자 자조모임에 나가면 엄마를 데려오려고 모임에 먼저 나와봤다는 딸들을 많이 만난다. 딸들은 언제나 이중작업을 해야 한다. 애도하면서 부모도 돌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부모를 잘 돌보라는 말만 한다.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은 내가 잘 애도해야 주위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다는 걸 안다.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지만 애도는 격렬한 노동이다. 상담 선생님은 더 태울 장작이 없을 때까지 활활 태워 재가 되게 만드는 것이 애도라고 했다. 마음 속에 쌓인 장작들은 자꾸자꾸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발견한 순간이나 소식을 처음 들은 순간에 붙들려 있다. 동생이 떨어진 창 앞에 돌아가 서 있던 나처럼 말이다.

일년 만에 다시 찾아간 서울추모공원에서
일년 만에 다시 찾아간 서울추모공원에서

각자의 속도대로 애도는 흐른다

그래도 애도라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계속 하다 보면 작지만 놀라운 일들이 생긴다. 어느 날 집에 들어섰는데 현관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게 느껴졌다. 영원히 잠긴 것 같았던 베란다 창문이 열려 있었다. 블라인드는 어정쩡하게 올려진 상태였다. 집 안에 공기가 도는 게 느껴졌다. 창문은 5분 후에 닫혔지만 남들 모르게 나만 알아차리는 순간들은 계속 왔다. 어느 날은 내가 동생의 옷을 꺼내 입었다. 동생은 멋진 옷을 모으는 걸 좋아했다. 부드러운 체크 남방은 내가 선물해준 옷이고 할리 데이비슨 청자켓은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한 달을 고르더니 산 옷이다. 그런 옷들을 꺼내 입었다. 엄마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그래도 그냥 입었다. 내가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그 옷들은 더 이상 ‘처분해야 하는데 꺼내 보기 두려운’ 물건들이 아니게 됐다. 동생 생각을 억지로 누르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옷들도 자주 들여다보고 만질 수 있었다. 아빠는 오래도록 성경만 읽다가 어느 날부터 오래된 사진과 비디오 테잎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속도대로 애도는 흘러간다. 동생이 죽은 작년 시월부터 나는 항상 심장 부근이 아팠다. 첫 기일에 한 절 옆에 있는 소각로에 가서 동생이 아끼던 옷과 항상 덮고 누워있던 이불을 태워주었다. 앞으로는 호수가 있고 뒤로는 산이 있는 한적하고 좋은 곳이었다. 그러고 나니 몸의 긴장이 조금 풀어졌다. 마디가 하얗게 될 때까지 쥐고 있었던 손을 풀었을 때처럼 조금씩 피가 돌았다. 엄마는 여전히 거실에 누워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엄마와 나는 애도의 속도도, 모습도 너무 다르다. 엄마에게도 엄마만 알 수 있는 작은 순간들이 찾아오기를 바라 본다. mind

 

고선규 mindworks 대표 임상심리 Ph.D.
임상심리전문가그룹 마인드웍스 대표이자 고려대 KU마음건강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중인 임상심리학자이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애도가 관심 분야이며 자살 사별자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와 상담을 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아름다운 것을 탐미하며 그 속에서 심리학적 이야기를 관찰하고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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