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그렇게 나쁩니까?
상태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실패가 그렇게 나쁩니까?
  • 2023.09.22 15:57
성공도 그렇게 만만치 않고 실패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왜 그럴까? 심리학이 말해주는 실패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이유를 알아보자.

성공이 그렇게 만만합니까?”, “실패가 그렇게 나쁩니까?” 영화 「헤어질 결심」의 남녀 주인공이 주고받은 동문서답 대화를 패러디해 보았다. 두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니오.” 성공도 그렇게 만만치 않고 실패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 만만치 않다는 성공을 해낸 사람들로 가득한 것 같다. 적어도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서는 말이다. 이에 비해 실패가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도 딱히 자랑할 일도 아니고, 실패를 하게 되면 좋은 기분도 아니니 실패한 이들은 자신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것이리라.

실패를 통해서 배운다”는 말은 너무나도 진부해서 무엇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지가 궁금해지기도 전에 귓등으로 흘려 버린다. 세상의 모든 일이 우리에게 명시적으로 뭔가를 가르쳐 주지는 않겠지만 암묵적으로는 뭔가를 알려준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어쨌든 한 번 사는 인생 이왕 실패의 경험도 괴롭거나 씁쓸한 사연으로만 남게 하기보다는 그 경험을 약간 변환시켜 본다면(실제적인 변화가 어렵다면 심리적으로 라도, 이걸 요즘은 ’정신승리’ 라고 함) 나빴던 현실도 조금, 기분도 조금 나아져 삶은 다시 생기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럼, 실패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이유를 내 나름대로 나열해 본다. 실패의 대상이나 영역(예, 실연, 실직 등)은 고려하지 않겠다.

실패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이유 1: 성공할 때까지 시도한 횟수-1=실패 횟수

시도의 횟수를 늘릴수록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법칙이 맞아떨어지는 영역에서 실패는 곧 성공이 임박했다는 시그널이다. 즉 성공할 때까지 필요한 시도 횟수에서 1을 빼면 실패의 횟수이다. 물론 세상사가 모두 선형적(연속적, 차원적)인 관계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들은 실제 계단식(비연속적, 범주적) 법칙을 따름에도 도전하는 사람들은 시도 횟수/노력의 양과 성공이 비례한다고 생각하고 무턱대고 시간만 투자하기도 한다. 가령 각종 시험의 N수생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법칙을 안다고 해도(알기도 어려움)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시도해 보는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적어도 해 보지 않아서 하는 후회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패에서 벗어나 성공의 범주category로 들어오려면(대개 합격이 그렇다) 역시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결론, 실패는 성공의 선행 변수이다.

빈센트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 1988, 캔버스에 유채. 해가 저물어 가는 석양을 등지고, 척박해 보이는 땅에 씨를 뿌리는 농부. 햇살은 농부를 응원하는 것 같다.
빈센트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 1988, 캔버스에 유채. 해가 저물어 가는 석양을 등지고, 척박해 보이는 땅에 씨를 뿌리는 농부. 햇살은 농부를 응원하는 것 같다.

실패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이유 2: 성-실보다 실-성, 순서도 중요하다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반대한다. 지나친 단순화이긴 하지만 성공 뒤에 실패, 실패 뒤에 성공, 둘 중 어느 쪽이 나을까? 끝이 좋으면 좋다, 말년 운이 좋아야 한다 등의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대개 뒤에 성공하는 것이 더 좋다고 보는 것 같다. 성공의 원인이나 선행조건이 무엇이든지, 지나치게 빨리, 먼저, 이른 나이에 성공했다는 사람들, 특히 그 성공으로 인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이루었다는 사람 중에 이후 크게 실패했다는 사람들의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대세는 지속가능성이다.

성공도 실패도 모두 한 종류로만 계속되기 어렵다면 순서는 성-실보다 실-성이 낫지 않을까? 어감이 좀 그렇지만. 실패와 성공, 그 사이에 수많은 작은 성공, 또 그보다 더 많은 실패가 있을 텐데 이때 필요한 것이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굳이 영어에서 ‘다시’를 의미하는 ‘re-‘에, 우리말로 ‘회복’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실패한 상태를 전제한다는 의미이다김주환, 2011. 실패에서 벗어나는 데에 작용하는 회복탄력성은 각자 다른데 가령 분석력, 관계성, 긍정성 등등이 있다. 실패의 충격으로 푹 주저앉는 바람 빠진 공이 아닌 적당히 빵빵해져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는 공이 되는 것이다.

실패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이유 3: 아이유IU; Intolerance of Uncertainty 낮추기 훈련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미래를 예측하기란 어렵다. 우리는 그 불확실성을 참지 못해 걱정과 불안을 겪는다. 불확실성을 잘 참을 수 있다면 괜한 걱정과 불안으로 인한 마음고생, 에너지 소진 등을 막을 수 있다. 성공이 성공을, 실패가 실패를 또는 성공이 실패를, 실패가 성공을 불러올지 알 수 없다. 거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변수가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까지 가서 성공을 조금이라도 맛보려면 견뎌야 한다. 실패했을 때는 미래가 비관적으로 보이며 성공은 더욱 불확실해 보인다.

이러한 실패를 거듭하게 되면 그만큼 우리는 본의 아니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견디는 꼴이 된다. 마치 불확실성을 견디는 능력을 키우는 것과 같다.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력’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력 부족’이라는 용어로 탄생한 아이유는 여러모로 소중하다. 디폴트가 부족이니 안심하라. 거듭된 실패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견디는 훈련이 되어 결국 불확실성이 견딜 만한 것이 될 때쯤이면 불안도, 걱정도 줄어들 것이다.

실패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이유 4: 성취욕 강화와 자제력 발휘

실패가 현재 진행형이라면? 상상도 하기 싫지만, 그 순간에 대부분 사람들은 일시적이라도 성취동기가 급격히 상승한다. 아마도 이때 아드레날린이 분출되어 승부욕이 자극되는 것이리라. 성취하려는 방식은 다르더라도 분명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는 증가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실패를 보상compensation하기 위한, 위협받는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일 수 있다Fenichel, 1945.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뭔가를 하게 만드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것인데 실패가 성취동기를 높인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가.

동기 심리학의 대가 헨리 머레이에 따르면 인간은 4가지 기본 동기를 가지는데 그중 사회적 권력욕구Murray, 1938, 다시 말해 타인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영향력을 끼친다고 해서 반드시 타인을 강하게 통제하려는 것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존재감에 스크래치를 내지 않으려고, 즉 실패에 따르는 비난을 피하고 싶은 마음과 또다시 발생할 수 있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행동을 자제하게 되기도 하는데 이 또한 권력욕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실패의 경험은 성취욕을 높이고 자제력을 향상하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우리의 소중한 자존감을 보호한다.

실패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이유 5: 실패의 쓴맛 미리보기, 하지만 몸에 좋다.

나의 성공을 도와줄 귀인이 동서남북 어디에서 나타날 것인지 묻고 다니거나 가만히 앉아 귀인을  기다리지 말고 누군가에게 내가 계획한 실패에 쓴 소리를 적극 요청해 보자. 연구자라면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한 후 받게 되는 심사 결과만큼 스트레스를 주는 것도 없다. 완벽주의까지 개입되면 논문의 진행은 더욱 더디어지고 시간은 또 흘러가고 스트레스는 가중된다. 어쨌든 용기 내어 투고하고 심사받았을 때 비록 그 지적이 아플지라도 신뢰할 만한 학술지의 경우, 심사위원들의 따끔한 지적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부족하게만 보였던 나의 논문이 새롭게 거듭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비록 게재 불가 등 일종의 실패 딱지를 받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점에 착안하여 목표하는 어떤 일이 기한은 다가오고 있는데 진행은 더디고(일종의 실패) 만족스럽지 못할 때 일부러 먼저 쓴 소리를 요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실패를 자초하는 것이다. 자신의 좋지 못한 상황을 스스로 개방하여 먼저 허점을 수정할 기회를 가질 수만 있다면, 이 과정을 자신이 의도한다면 실패는 그렇게 기분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며 최후에는 웃게 될 것이다.

실패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이유 6: 실패의 뇌 반응-스트레스 호르몬의 두 얼굴

뇌 과학은 잘 몰라도 실패했을 때 생리적 변화가 있고 이것은 호르몬과 연관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실패했을 때 나올 만한 호르몬을 편의상, 스트레스 호르몬 3종 세트라고 부르겠다. 첫째, 코르티솔Cortisol은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되어 심리적 긴장과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 둘째, 아드레날린Adrenaline은 심장 박동 수를 증가시키고 혈압을 높이며 긴장을 지속시킨다. 셋째,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e은 기분을 저하하고 경계심을 유지하게 만든다.

오늘 아침에도 우리 몸에서는 벌써 코르티솔이 분비되었다. 코르티솔 각성 반응으로 인해 우리는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도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혈압과 심박수를 증가시켜 체력을 강화한다. 아드레날린은 근육수축을 유도하여 반응속도를 향상하고 노르아드레날린은 주의 집중력을 증가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따라서 스트레스 호르몬 3종 세트는 실패했을 때 분비되는 몹쓸 물질로만 볼 게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을 실패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상태로 준비시켜 주는 고마운 호르몬임을 잊지 말자. 주의할 것은 시간을 질질 끌면 안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치고 빠져야 한다.

그래도 실패가 조금은 나쁜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실패, 가능하다.

실패는 있어도 좌절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존경스럽다. 실패를 하게 되면 대개 기분이 나빠진다. 우울해진다. 적어도 실패 직후에는 말이다. 금세 툭툭 털고 일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울함이 소위 까치집을 지어 둥지를 틀 정도로 심각해지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실패는 사람의 기운을 빼놓는다. 자존감을 떨어트린다. 실패를 반복하게 되면 이 과정은 가속화되며 그야말로 시도할 에너지도 고갈된다. 이것이 실패가 나쁜 이유이다.

성공할 경우, 의도하지 않아도 기쁨의 호르몬 4종 세트(도파민, 세로토닌, 엔도르핀, 옥시토신)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이 팍팍 나와서 기운이 샘솟지만, 실패에는 대처법이 꼭 필요하다. 어떤 종류의, 어떤 무게의 실패이든 일단 실패하게 되면 이렇게 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맛있는 것(추천 메뉴: 남이 사주는 소고기)을 먹고 안전한 사람(객관적 평가 말고 무조건 내 편 들어줄 사람)에게 위로를 구하고 푹 잘 것. 여의치 않다면 내돈 내산 삼겹살, 치킨도 가능하며 위로해 줄 가용한 지인이 없다면 스스로 토닥토닥 위로하는 것도 좋다. 그래야 재시도에 필요한 에너지가 충전된다.

실패’까지 ‘성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실패했을 때 어떻게 해보려고 무리하게 낙관성을 발휘하려 하거나 세상 끝난 것처럼 바닥으로 가라앉아 지구 맨틀 뚫고 들어가지 말고 일단 재시동을 걸 수 있을 정도로만 기운을 차리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실패 자체보다는 실패의 후속 조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mind

    <참고문헌>

  • 김주환 (2011) 회복탄력성, 서울: 위즈덤 하우스
  • Fenichel, O. (1945). The psychoanalytic theory of neurosis. New York: Norton & Company.
  • Murray, H. (1938). Explorations in personalit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 내 삶의 심리학 mind는 「실패연구소」와 공동기획으로 '실패의 심리학' 전문가 칼럼을 연재한다. 학습 및 동기, 임상 및 상담, 사회 및 문화, 산업 및 조직 등 여러 분야의 심리학 전문가로부터 실패 관련 현상을 폭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과 다양한 시각을 전한다. 본 원고는 KIAST 실패연구소 뉴스레터 2023년 7월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KAIST 실패연구소

김근향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너무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꿈을 심리학자로 정해버려 별다른 의심 없이 그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그 여정에서 다시 태어나면 꼭 눈에 보이는 일을 해 봐야지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의 심리학 대세론에 선견지명이 있었다며 스스로 뿌듯해 하며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꾸어 본다. 마음 통하는 사람들과 생생한 삶 속에서 심리학의 즐거움과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