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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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란 무엇인가?
  • 2023.07.21 14:31
삶은 성공과 실패의 연속이다. 성공만이 존재한다면 더 좋겠지만, 실패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같은 실패여도, 어느 누구에게는 과거와 좌절이, 어느 누구에게는 미래와 도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때로 자기의 행동이 가져온 결과를 실패나 성공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가 한편으로는 객관적인 기준에 따른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히 주관적일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객관적으로는 주어진 기준을 달성하지 못한 결과를 실패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니면 도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한 반응도 상당히 달라서, 우리는 좌절할 수도 있지만, 새로운 시도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실패는 일정하게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여러 요인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이에 실패에 대한 이해를 좀 깊이 있게 함으로써, 이러한 경험에 대해 좀 더 바람직하고 적응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실패의 의미와 기준

사전적 의미로, 실패는 자기가 의도하거나 바람직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상태를 뜻한다. 자기가 수강하는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을 때나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상대 팀을 이기지 못했을 때, 우리는 실패를 경험한다. 그러면 실패는 인간만 경험할까? 보통은 그렇지 않다. 사자가 먹이 사냥에 실패했을 때나 자기의 소유물을 훔쳐 도망가는 동물을 응징하지 못했을 때, 그들은 좌절해서 분노를 표현한다. 배고픈 원숭이도 사다리 위에 있는 바나나를 사람들의 방해로 먹을 수 없을 때 화를 낸다. 이처럼 실패는 여러 종의 유기체들이 경험하는 상당히 흔한 사건 중의 하나이다.

그러면 실패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의도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그것은 모두 우리에게 실패감을 줄까? 때로는 그럴 수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과제가 매우 어려워 성공 확률이 상당히 낮다면, 사람들은 그러한 과제를 달성하지 못해도 큰 실패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우리 축구 국가 대표가 세계 랭킹 1위의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 대표에게 졌다고 해서, 우리가 큰 좌절이나 분노를 느끼지는 않는다. 반면에 매우 어렵지는 않아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는 과제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는 실패감을 경험하기 쉽다.

성공의 경험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쉬운 과제를 달성했다고 해서 큰 성공의 기쁨을 느끼지는 않는다. 대학생이 중학교에서 배우는 수학 문제를 풀었다고 해서 자신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어려운 과제를 성취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실패나 성공은 단지 주어진 과업의 달성 여부뿐만 아니라, 과제 난이도의 영향을 받는 경험이다.

후고 심베리(Hugo Simberg)의 '상처입은 천사(The wounded angel, 1903). 상처 입은 천사의 두 손에는 치유와 재생을 상징하는 눈풀꽃(설강화)가 쥐어져 있다.
후고 심베리(Hugo Simberg)의 '상처입은 천사(The wounded angel, 1903). 상처 입은 천사의 두 손에는 치유와 재생을 상징하는 눈풀꽃(설강화)가 쥐어져 있다.

실패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이외에도 실패의 경험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그 하나가 다른 사람과의 비교이다. 심리학에서 흔히 쓰는 사회 비교라는 말은 자기의 의견이나 능력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의 키가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특정 과업에 대한 실패나 성공의 판단도 다른 사람의 성취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과제가 매우 어렵더라도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 어떤 사람이 성공했다면, 나는 그 과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심한 실패감을 느낄 수 있다.

실패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요인이 자기의 판단 기준이다. 이와 같은 주관적 기준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기준과 같을 수도 있지만, 이 또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는 보통 주어진 과목에서 90점을 받으면 상당히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100점을 받지 못하면 그 시험에서 실패했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판단 기준은 과거의 경험이나 다른 사람의 기대와 같은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계속 100점을 받다가 이번에 그러지 못했다거나, 100점을 받아야 성공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면, 우리는 100점이라는 점수를 성공과 실패의 판단 기준으로 삼게 된다.

이처럼 실패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여럿이다. 과제의 난이도라는 객관적인 기준도 있지만, 다른 사람과의 비교나 자기의 판단 기준과 같은 기준도 있다. 이때 후자의 두 기준은 객관적일 수도 있고 주관적일 수도 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일반적인 성취 수준이나 판단 기준을 반영하고 있다면 객관적이고, 그렇지 않다면 주관적이다. 이때 실패에 대한 나의 판단 기준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면, 그것은 적응적이거나 바람직하지는 않다. 아주 뛰어난 소수의 몇 명과 비교해서 나의 성취를 판단하거나, 자기의 성공 기준을 과도하게 높게 설정하면, 실패를 비현실적으로 자주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그 반대도 문제이다. 기준이 너무 낮으면 늘 성공은 하겠지만, 그러한 성공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해 가치 없는 성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패가 두려운 이유

우리는 살면서 실패도 경험하고 성공도 경험한다. 그러면 실패의 경험이 더 많을까, 아니면 성공의 경험이 더 많을까? 일상의 삶에서는 성공의 경험이 더 많다. 매일 아침 정해놓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 미리 생각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학교 가는 것, 친구와 약속 시간에 만나 점심 먹는 것, 이 모든 것이 의도한 목표를 달성한 성공이다. 우리가 이러한 성취를 난이도, 사회 비교, 주관적 기준에 따라 사소한 것으로 여기지만, 실제로 이런 일에 대한 실패도 때로는 우리에게 큰 실패감을 준다. 늦게 일어나서 취업 시험을 보지 못했다면, 약속 시간에 늦어 몇 년 만에 보기로 한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일정 수준의 좌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때 늦게 일어나서 시험을 치르지 못한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적다. 그럼 성공 경험이 이처럼 더 많다면, 드물게 겪는 한두 번의 실패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산술적으로는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심리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부정성 편향이라는 현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강도가 같더라도 그것이 불쾌하거나 해로운 사건이면 유쾌하거나 중립적인 사건보다 우리의 심리적 상태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공이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인 영향 가령 기쁨, 자부심, 성취감에 비해, 실패와 같은 부정적인 사건이 주는 슬픔이나 분노, 좌절감의 정도가 훨씬 더 크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몇몇 심리학자는 부정적 사건의 영향력이 긍정적 사건의 영향력보다 4배 이상 더 크다고 말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끔 겪게 되는 실패라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가볍게 여기면서 넘어갈 수가 없다. 늘 시험도 잘 보고 다른 사람보다도 비교 우위에 있던 그 많은 성공 경험도 드물게 닥치는 실패의 큰 충격을 쉽게 없애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실패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또 있다. 무엇보다도 실패는 자기에 대한 가치감을 떨어뜨린다. 우리 대부분은 자기가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고, 남들과 비교해서도 괜찮고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와 같은 자기가치감 혹은 자아존중감이 높을 때, 우리는 자기에게 자부심을 느끼면서 살맛이 난다. 반대로, 내가 별 볼 일 없고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자신감 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이때 실패 경험은 우리의 자기가치감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부정적 사건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실패는 자기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실패 경험은 자신감을 떨어뜨려 스스로를 위축되게 함으로써, 자기의 능력이나 역량을 원래보다도 더 낮게 평가하게 만든다. 자신감의 저하는 과제를 더 달성하기 어렵게 보이도록 만들고, 이것은 또다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더 키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보니, 실패의 위험이 있지만 좀 더 가치 있고 높은 목표를 추구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실패를 하지 않는 안전한 목표 달성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 문제는 안전하게 달성한 성취가 본인에게 성공 경험을 주기 어렵고, 그것이 실패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실패에 따른 악순환은 계속될 수 있다.

실패는 꼭 나쁜 것인가?

우리 인간은 매우 무기력한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몸을 움직이기 어렵고, 혼자 스스로 먹을 수도 없고, 세상이 어떤 곳인지 이해하는 능력도 없다. 이러한 존재가 이후 다양한 경험과 학습을 통해 이 세상에 적응하면서 성장하고 발달한다. 이런 과정 속에는 무수히 많은 성공과 실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보 측면에서 볼 때, 성공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옳으니 그대로 계속하라는 사인이고, 실패는 과거의 방식이 부적절하니 그것을 바꾸라는 사인이다. 자기의 공부법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면, 우리는 그 공부법을 바꿀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방법이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우리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처럼 실패는 우리에게 삶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건이다. 그래서 어떤 진화론자는 긍정적 정보보다 부정적 정보가 우리 삶에 더 가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패는 우리에게 변화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변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기존과는 다른 아이디어를 낼 수도 있고, 그것을 시도해 보면서 새로운 결과물을 얻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실패는 다름 아닌 창조의 원천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가능한 일이다. 실패가 지금은 좌절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초래하지만,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 보면 실패는 지금보다 더 큰 미래의 발전과 성장의 잠재력을 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실패에 직면하면 왜 실패했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고자 한다. 그 원인에는 과제의 난이도나 운과 같은 외적인 요인도 있지만, 자기의 능력, 적성, 노력과 같은 내적인 요인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좀 더 잘 알게 된다. 우리는 다양한 실패의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 한 자기의 행동, 사고방식, 가치관, 특기와 적성, 취미 등에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좀 더 분석하고 관찰함으로써 자기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이러한 지식은 앞으로 자기가 무엇을 추구하면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삶의 나침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실패는 우리 삶의 의미를 확장시켜 준다. 우리는 실패의 원인이나 대처 방법 등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실패 경험의 가치나 의미를 찾는다. 재수를 한 대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과 비교해서 재수라는 경험을 다르게 인식한다. 재수를 경험한 많은 학생이 그것이 준 삶에 대한 깨달음이나 대학생활의 소중함을 얘기하곤 한다. 이처럼 실패라는 부정적 사건에 대한 의미의 재발견은 그 실패가 주는 심리적인 아픔이나 좌절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재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학생은 아직도 재수라는 사건이 준 아픔이나 좌절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 경험한 실패를 회피나 거부 혹은 후회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아직도 그 실패 경험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실패는 우리에게 그것의 의미를 알게 해줌으로써 우리의 삶을 심리적으로 풍요롭게 해주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그 실패 경험을 극복하도록 해준다.

실패를 도전으로

실패와 도전의 차이는 무엇일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실패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목표한 것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이다. 도전은 성공하기 위해서 많은 신체적 및 정신적 노력이 필요한 과업으로, 이것은 곧 한 개인의 능력을 시험하는 일이다. 실패와 도전의 한 가지 분명한 차이점은 지금의 상황이나 상태를 바라보는 시점에 있다. 실패는 그것을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도전은 그것을 미래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실패는 언제든지 앞으로의 도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실패가 실패인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도전하지 않기 때문이지, 그 자체로 실패이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가 도전한다면, 그 순간 실패는 좌절을 가져온 결과가 아니라 앞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로 탈바꿈한다.

우리가 실패를 도전으로 바꾸는 과정에는 인내심이나 끈기와 같은 역량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어려운 시간을 참고 견디는 힘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내심에는 두 종류가 있을 수 있다. 그 하나는 성공을 추구할 때 필요한 인내심으로, 이때 경험하는 정서는 기대나 희망과 같은 긍정적인 것이다. 강원도 바닷가로 여행가는 날을 기다리는 마음을 생각해 보라. 두 번째 유형은 실패를 극복할 때 필요한 인내심이다. 이때 참아야 할 정서는 좌절이나 고통과 같은 부정적인 것이다. 붐비고 더운 지하철에서 그 불편과 불쾌를 참아야 하는 것이 그 한 예이다.

이 두 유형의 인내심은 동일하지 않다. 긍정적인 정서 상태에서 성공을 추구하는 것과, 부정적인 정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같지 않다. 후자의 부정적인 정서 상태가 훨씬 견디기 힘들고, 전자의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 꼭 후자의 인내심도 강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성공 경험은 아주 많고 실패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이 실패를 한 번 겪으면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쩌면 실패를 견디는 인내심은 상당 부분 실패를 극복하는 과정이나 그 경험을 통해 발달하는 것일 수 있다.

미래 지향적으로 실패를 바라보기

실패를 극복하는 인내심은 대부분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노력의 산물이다. 이러한 힘을 키우는 한 가지 방법은 실패를 현재의 결과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추구해야 할 도전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의 시도가 가져온 불충분한 결과에만 집착하면, 앞서 언급한 부정적인 정서만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실패를 보는 시각을 미래 지향적으로 전환하면, 부정적인 정서를 극복하면서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와 함께 우리가 과거에 경험한 많은 성공 사례를 떠올린다면, 지금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부정적인 사건의 영향이 긍정적인 사건의 영향보다 4배 이상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별 큰 문제나 좌절 없이 지금까지 잘살아 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마도 그것은 실패와 같은 한 번의 부정적 사건이 주는 충격을 상쇄하는 데 필요한 성공과 같은 긍정적인 경험을 네 배 정도는 더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실패를 겪을 당시에는 그것에만 주목하다보니, 다른 여러 성공의 사례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결코 성공 경험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실패의 아픔을 극복하려면 본인의 노력이나 의지력도 중요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도 중요하다. 우리가 나는 어떤 사람이다와 같이 자기에 대한 개념을 형성, 유지, 변화하는 과정에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 부모나 교사, 친구와 같이 우리에게 가깝고 중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나를 격려하고 응원할 때, 우리는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미래 지향적인 힘을 얻게 된다. 실패가 도전으로 바뀌는 변곡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실패는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와 같은 존재이다. 우리가 실패의 어떤 얼굴을 볼 것인지는 우리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mind

※ 내 삶의 심리학 mind는 「실패연구소」와 공동기획으로 '실패의 심리학' 전문가 칼럼을 연재한다. 학습 및 동기, 임상 및 상담, 사회 및 문화, 산업 및 조직 등 여러 분야의 심리학 전문가로부터 실패 관련 현상을 폭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과 다양한 시각을 전한다. 본 원고는 KIAST 실패연구소 뉴스레터 2023년 6월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KAIST 실패연구소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사회및문화심리 Ph.D.
정태연 교수는 사회심리학의 주제 중 대인관계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하고, 현재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사회 및 문화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기초로, 한국인의 성인발달과 대인관계, 한국의 사회문제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심리학적 지식을 군대와 같은 다양한 조직에 적용하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회심리학」(2016), 「심리학, 군대 가다」(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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