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 대한 책임과 성공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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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 대한 책임과 성공의 조건
  • 2023.10.13 22:37
실패를 마주했을 때. 실패를 쿨하게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본다.

실패에 관한 심리학 연구에 오바마가 던진 돌멩이

200923, 미국의 44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버락 오바마는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지 2주 만에 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다 망쳤습니다(I screwed up)”라고 말했다. 보건부 장관과 백악관 성과관리 최고책임자로 지명된 두 후보자가 탈세 문제로 낙마하자 인사 실패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한 말이다. 물론 이렇게 자신의 잘못에 대해 공개적으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소위 언론플레이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직전 대통령이었던 부시는 8년의 재임 기간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지고 사과하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한 언론플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설명되지 않는 점이 있다. 이 지점에서 과연 심리학자들은 오바마의 인터뷰를 어떤 심정으로 보았을지 자못 궁금하다. 오바마가 보였던 태도는 심리학의 많은 연구 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책임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대한 심리학 연구 결과는 꽤 일관되게 나타났다Mezulis et al., 2004. 사람들은 성공에 대해서는 자신 때문이라고 여기고 실패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나 상황, 때로는 운 때문이라고 여긴다. 전문용어를 사용해 다시 표현하자면, 성공에 대해서는 내적 귀인을 하고 실패에 대해서는 외적 귀인을 한다. 이렇게 성공은 자신, 실패는 남 때문이라는 것이 항상 사실 이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향된 지각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위주 귀인편향self-serving attributional bias이라고 부른다.

후속 연구에 의하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낮은 사람들에 비해 자기 위주 귀인편향을 더 많이 보이는데Blaine & Crocker, 1993 이에 대해서는 최소 두 개의 설명이 가능하다. 동기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에 따르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판단을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이를 해칠 수 있는 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 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에서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실제 자신의 인생에서 실패보다는 성공을 더 많이 경험해왔기 때문에 실패는 자신이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자존감이 낮거나 우울한 사람들에게서는 이러한 편향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미국의 44대 대통령 오버마. 그는 쿨하게 자신의 실패를 인정했다.
미국의 44대 대통령 오버마. 그는 쿨하게 자신의 실패를 인정했다.

 

누가 실패에 대한 책임을 수용하는가?

다시 오바마의 인터뷰로 돌아가 보자. 왜 오바마는 자신의 실패에 대해 책임을 통감했던 것일까? 비록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오르기는 했지만, 사실 오바마는 낮은 자존감과 우울로 고통받고 있었던 것일까? 오바마의 발언을 직접 들어보자.

나는 텔레비전에 나와서 내가 다 망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책임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말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하려는 것입니다.

실수를 대하는 이러한 오바마의 태도는 기존 심리학 연구에서 포착하지 못했던 모습이지만 분명 존재하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실수를 바로잡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수용한다. 이번의 실패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다음번에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고 과거와 똑같이 행동한다면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음번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잘못했던 부분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 바로 실패에 대해 책임을 수용하는 것이다.

심리학 문헌 중 실패에 대한 이런 태도를 다루는 논문이 많지는 않지만, 소수 존재하기는 한다Knee & Zuckerman, 1996; Park et al., 2009, Keefer et al., 2018. 그리고 이 연구를 관통하는 개념은 성장이다. 그중 한 연구Park et al., 2009를 자세히 살펴보자. 연구참여자들은 먼저 자존감과 성장 동기를 측정하는 설문에 응답하였고 이후 듣기평가 과제를 수행하였다. 연구자는 참여자들의 실제 점수와는 상관없이 무작위로 높거나(성공 조건) 낮은(실패 조건) 점수를 준 후 이러한 결과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성공 조건에서는 자존감도 성장 동기도 책임에 대한 응답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 높은 점수를 받았던 사람들은 자존감과 성장 동기의 수준과는 상관없이 전반적으로 자신이 잘해서라고 응답하였다. 반면, 실패 조건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자존감과 성장 동기가 모두 높은 사람은 자존감은 높지만, 성장 동기가 낮은 사람보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더 많이 수용하였다. 이 연구에서 책임을 수용한 이유에 대해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지만, 성장 동기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자신의 실수를 겸허히 받아들였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실패에 대한 태도를 보는 타인의 눈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고 다음번에는 자신이 한 잘못을 수정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는 것은 곧 자신이 실패한 업무(그리고 미래에 성공시켜야 할 업무)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어떤 업무가 자신의 통제권을 벗어나 있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그 업무의 실패에 대해 책임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향후 자신의 노력으로 그 업무를 성공으로 이끌 수도 없다. 결국 책임을 진다는 것은 유능성의 표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말로 사람들은 실패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들을 더 유능하다고 평가할까? 조직 맥락을 활용한 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자신이 맡은 업무를 실패한 사람이 그 실패를 노력의 부족 등으로 내적 귀인 하지 않고 운이나 업무의 특성 등으로 외적 귀인 했을 때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살펴보았다Lee & Tiedens, 2001. 그 결과, 참여자들은 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외적 귀인 하는 사람에 대해 유능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자기 상사가 외적 귀인을 할 때는 실패의 원인에 대한 설명을 신뢰하지 않았고 상사에 대해 호감도 덜 느꼈다.

결국 심리학에서 행해진 자기 위주 귀인편향 연구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책임을 기꺼이 수용하는데 그 사람들은 성장과 발전을 원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과업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책임을 수용하는데, 이런 모습을 통해 주변 사람들은 이들이 유능하다고 믿고 이들로부터 긍정적인 인상을 받는다.

성공적인 실패의 조건

다행히 최근에는 실패에 대한 세상의 시각이 많이 바뀌고 있다. 구글은 실패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구성원에게 보너스를 주고, 3M과 슈퍼셀에서는 실패한 사람에게 파티를 열어주고, 혼다에서는 정기적으로 실패왕을 선발한다. 핀란드에서는 매년 1013일에 교수, 학생, 벤처사업가 등이 모여 <실패의 날> 행사를 열기도 한다. 더 이상 실패를 피해야 할, 자신과 분리해야 할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성공의 필수 과정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카이스트 내에 <실패연구소>가 설립되는 등 위대한 성공을 이루는 과정에서 실패할 수 있는 자유를 전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패에 대한 이런 인식의 변화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실패를 기피하고 두려워했던 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패를 축하하는 파티를 열고 실패한 사람에게 상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문화 정착을 위한 캠페인으로서의 실패 파티가 새로운 문화가 완전히 정착된 이후에도, 즉 모두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의미가 있을지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실패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 변화가 하나의 문화현상 혹은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개인과 조직,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한 조건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자.

실패는 그 자체로 축하할 만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 실패 파티의 핵심은 실패했다는 사실에 있지 않고, 어려운 목표를 설정하여 이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고 비록 실패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교훈을 얻었다는 데 있다. 실패는 분명 해도 되는 것이고 오늘날과 같이 이뤄야 할 목표가 어려워진 세상에서는 할 수밖에 없는 것일 수는 있으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실패는 아름답고 숭고한가? 그렇지 않다. 실패가 아름답게 느껴지기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는데 세월아 네월아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다가 맞닥트린 실패에서는 아무런 아름다움이 묻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성 있는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가치 있는 목표를 추구하는지다. 어느 날 친구가 타고 온 롤스로이스가 너무 멋져 보여서 자신도 1년 이내에 롤스로이스를 사겠다는 목표를 가졌다가 실패한 사람을 생각해 보자. 이 사람이 하루에 세 시간씩 자며 피나는 노력을 하였다고 한들 이 실패에서 숭고함이 배어나지는 않는다. 가치 있는 목표를 정해 진정성 있는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을 때 사람들은 그 실패 속에서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느낀다.

실패는 반드시 성공에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이 부분이 중요하다. 구글은 구글 묘지라는 공간을 만들어 출시했다가 실패한 제품이나 프로젝트를 모아 놓았다. 스웨덴에는 조직심리학 박사인 사무엘 웨스트가 글로벌 회사들의 실패 사례를 모아 놓은 실패박물관이 있다. 그렇다면 누구든 구글 묘지나 실패박물관을 둘러보기만 하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럴 리 없다. 맥락 없는 실패는 성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패 사례 모음집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도전할 용기를 심어줄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성공의 발판이 되지는 않는다.

실패가 성공의 다리가 되기 위해서는 방향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에디슨이 백열전구의 필라멘트를 만들기 위해 1,000개가 넘는 재료로 실험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만약 에디슨이 필라멘트 재료로 100개를 실험했다가 실패하고, 이번에는 전기장판의 전열선 재료로 100개를 실험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전화선의 재료로 100개를 실험했다가 실패했다면 이런 실패의 모음은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백열전구를 만들겠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1,000번의 실패를 했기 때문에 끝내 성공한 것이다.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10,000가지 방법을 알아냈을 뿐이다.”라는 에디슨의 말은 방향성을 전제했을 때만 비로소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성공과 실패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정체성

하루하루의 목표 설정이 아니라 삶을 두고 긴 호흡으로 설정한 방향성을 심리학에서는 정체성이라 부른다. 정체성이 있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즉 자신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성에 대해 결단을 내리고 실천하는 것이다. 성공을 추구하기에 앞서, 실패를 축하하기에 앞서 먼저 이루어야 할 것이 바로 정체성을 세우는 것이다. 그랬을 때 자신의 삶을 어떤 길로 이끌지 결정할 수 있고, 그 길 위에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가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여 위대한 성공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뿐 아니라 조직의 정체성도 마찬가지이다. 스티브 잡스가 생각했던 애플의 정체성은 혼을 빼놓을 만큼 훌륭한 제품을 만듦으로써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 우주에 흔적을 남기는 기업이었다. 지난해까지 17년간 전 세계 텔레비전 판매량 1위를 차지했던 삼성보다 애플이 더 낮은 비용으로 같은 수준의 텔레비전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애플은 아마 평범한 가정용 텔레비전을 만들어 팔지 않을 것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언정, 평범한 텔레비전을 생산하는 것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 우주에 흔적을 남기겠다는 애플의 정체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애플이 삼성보다 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냉철히 판단하고, 자신이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호기로이 꿈을 품고, 그 길에서 마주할 많은 실패에 대해 기꺼이 책임을 지고 정성껏 잘못된 부분을 고쳐 다음번에는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성공의 길이고 실패는 그 길에서 맡은 바 역할이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기 위주 귀인편향에 관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실패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끝내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이른다. 어쩌면 이것이 대다수 사람과는 다른,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일 것이다. mind

    <참고문헌>

  • Blaine, B., & Crocker, J. (1993). Self-esteem and self-serving biases in reactions to positive and negative events: An integrative review. In R. F. Baumeister (Ed.), Self-esteem: The puzzle of low self-regard (pp. 5585). New York: Plenum
  • Keefer, L. A., Brown, M., McGrew, S. J., & Reeves, S. L. (2018). Growth motivation moderates a self-serving attribution bias in the health domain.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134, 60-65.
  • Knee, C. R., & Zuckerman, M. (1996). Causality orientations and the disappearance of the self-serving bias. Journal of Research in Personality, 30, 76-87.
  • Lee, F., & Tiedens, L. Z. (2001). Who's being served? “Self-serving” attributions in social hierarchies.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84, 254-287.
  • Mezulis, A. H., Abramson, L. Y., Hyde, J. S., & Hankin, B. L. (2004). Is there a universal positivity bias in attributions? A meta-analytic review of individual, developmental, and cultural differences in the self-serving attributional bias. Psychological Bulletin, 130, 711-747.
  • Park, S. W., Bauer, J. J., & Arbuckle, N. B. (2009). Growth motivation attenuates the self-serving attribution. Journal of Research in Personality, 43, 914-917.

내 삶의 심리학 mind는 「실패연구소」와 공동기획으로 '실패의 심리학' 전문가 칼럼을 연재한다. 학습 및 동기, 임상 및 상담, 사회 및 문화, 산업 및 조직 등 여러 분야의 심리학 전문가로부터 실패 관련 현상을 폭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과 다양한 시각을 전한다. 본 원고는 KIAST 실패연구소 뉴스레터 2023년 8월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https://caf.kaist.ac.kr/boards/view/board_newsletter/693)

박선웅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성격및사회심리 Ph.D.
박선웅 교수는 사회 및 성격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나르시시즘 연구로 노스이스턴대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고려대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와 한국인들에게 부족해 보이는 개인적 정체성, 그리고 이 둘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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