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실패를 부르는 마음의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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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실패를 부르는 마음의 습관
  • 2023.11.06 18:56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인거야." 압축 성장 시대를 살아온 우리 한국인에게 익숙한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성공으로 향한 외줄타기 인생을 강요당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 아닌 나는 과연 실패한 사람일까?

실패에 민감한 한국인

한국인들은 실패에 민감하다. 아마도 성공에 대한 욕구가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들의 높은 성공 욕구는 우선 한국의 현대사와 관련이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은 극빈국에서 IMF선정 세계 10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수많은 이들의 성공을 목격했다.

쌀 팔던 구멍가게가 대기업이 되었고 동네 자동차 정비소로 시작한 회사는 지금 전 세계에 자동차를 수출하고 있다. 격동의 역사에서 맨주먹으로 일어난 이들이 유례없는 부를 일궈내고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코피 흘려가며 공부한 사람들이 집안을 일으키는 일들이 실제로 주변에서 일어났다.

하다못해 집 앞에 들어오는 공장이나 도로 때문에 받은 보상으로 벼락부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나와 똑같이 없는 형편에 공부하던 친구들의 성공에, 별 볼 일 없는 집안 출신이라 무시했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떵떵거리고 사는 모습에 한국인들은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하다.

남들이 성공한 방법은 어느새 모두가 따르는 길이 되었다. 사업, 고시, 대학, 부동산….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에는 이러한 방법들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높은 자영업 비율, 신림동과 대방동 등 이른바 고시촌에 넘쳐나는 고시생들, 90%를 넘는 대학 진학률과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부동산 불패 신화는 한국인들의 성공에 대한 욕망의 산물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공을 원하는 이들은 많고 자원은 한정돼 있다. 세계적인 추세인 경제성장의 둔화와 기후 위기와 팬데믹 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사람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이제 계층 이동의 문은 닫힌 것인가. 내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더 이상 없는 것일까.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당시 불꽃처럼 타올랐던 코인 시장과 주식, 부동산 광풍은 이러한 한국인들의 불안을 반영한 것이었다.

상대적 박탈감 : 성공에 대한 집착을 부추기는 마음의 습관

이러한 불안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있다. 바로 마음의 습관이다.

부동산 광풍이 몰아치던 2년 전, ‘벼락거지라는 말이 유행했다. 벼락거지는 벼락부자의 반대말로 남의 집은 엄청나게 올랐는데 우리 집은 그대로여서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었다는 뜻이다. 내 재산은 그대로인데 남과 비교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처지를 순식간에 거지로 몰아가다니 대단히 놀라운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자신의 상태와는 별개로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과정을 심리학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상대적 박탈감의 조건을 다음과 같다. ① 내가 원하던 대상 X, ② 자기 이외의 누군가가 소유하고 있으며, ③ 자신이 X를 소유할 자격이 있었음을 느끼고, ④ 자신이 X를 소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X를 소유하지 못한 데 대한 개인적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다.

자신을 스스로 벼락거지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심리적 과정은 ③~⑤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다른 이들이 아닌 자신이 값이 오른 아파트를 소유할 자격이 있고, 소유할 수 있었으며, 그걸 갖지 못한 책임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벼락거지란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인들이 상대적 박탈감에 민감하다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이러한 심리 과정이 일반화되어 있다는 뜻일 터이다.

상대적 박탈감은 한국인들이 스스로 느끼는 경제적 지위에도 반영된다. 한 투자회사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중산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79.1%가 자신을 빈곤층이라고 생각했으며, 심지어 월 소득 6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층 또한 거의 절반(49.1%)이 자신을 빈곤층이라고 지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각해보자. 연봉 1억 원 이상을 받는 사람이 극빈층이거나 겨우 중산층(47.0%)에 턱걸이할 정도라면 한국인 평균 소득은 1억 원을 한참 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2021년 기준 대한민국 평균 소득은 연봉 3,996만 원, 월평균 333만 원이다. 한국인들이 지각하는 현실은 실제와는 아득한 차이가 있다.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 본인을 실패자(극빈층)라고 지각한다면 그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의 경우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한국인들은 성공에 대한 압박만큼이나 자신들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지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자신들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만큼 성공에 집착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한국인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이토록 심하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심리학의 연구들에 따르면 문화심리학 연구들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자신에 대한 강한 긍정적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긍정적 환상이란 남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사건들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남들에게 일어나지 않는 좋은 일들이 나에게는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현실적으로 크지 않기에 긍정적 환상이라는 말이 붙는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 환상은 높은 자기가치감과 관련된다. , ‘나는 대단한 사람’, ‘나는 보다 나은 삶을 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에서 나에게는 좋은 일만 일어나고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가능할 수 있다. 때문에, 자기가치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일들을 실제보다 훨씬 나쁘게 지각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특히,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느끼고 그러한 사실을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패한 아메리칸 드림을 보여준 영화 위대한 개츠비(2013).
실패한 아메리칸 드림을 보여준 영화 위대한 개츠비(2013).

왜곡된 능력주의 : 공정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성공은 당연하다는 믿음

이와 관련되는 또 하나의 마음의 습관은 왜곡된 능력주의다. 능력주의, 즉 메리토크라시는 출신이나 가문 등이 아니라 실적과 능력, 즉 메리트merit에 따라서 지위나 보수가 결정되는 사회체제 또는 그러한 주장을 뜻한다.

한국은 미국과 더불어 이 능력주의가 가장 거세게 발현하는 나라 중 하나다.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의 주장을 보면, 자기 능력이 되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본인의 능력으로 차지한 것에 대해서 다른 이들은 어떠한 불평도 제기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듯하다. 여기까지 가면 능력주의의 본래 의미와는 거리가 생긴다. 따라서 이는 왜곡된 능력주의다.

최근 들어 사회적 불공정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들 역시 왜곡된 능력주의의 신봉자들로 여겨질 때가 있다. 개중 과격한 이들은 능력 없는 이들에 대한 국가의 어떠한 개입(예를 들면, 복지), 능력이 있는 이들의 기회를 가로막는 것이라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능력이 아닌 다른 어떤 기준도 인정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능력주의에는 장점도 많다. 타고난 핏줄이나 계급이 아닌 자기 능력만으로 성취를 이룰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꿈같은 일인가. 실제로 미국의 능력주의는 아메리칸 드림의 이론적 배경이기도 하다. 수많은 이민자가 성공이라는 아름다운 꿈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중에 그 꿈을 이룬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메리칸드림의 예를 들었지만,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의 기준에 들기는 어렵다. 성공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삶의 수준을 유지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능력주의를 주장하는 일부 한국인들은 그 어려운 일을 나는 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한 믿음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과장된 평가가 깔려있다. , 나는 남들보다 능력이 있고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자격이 있기 때문에, 공정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성공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공은 개인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과 사회 변화, 문화와 제도, 다른 사람들과의 이해관계 등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외부적 요인이 맞물려 누군가의 성공과 누군가의 실패를 빚어낸다. 나의 성공은 오로지 나의 능력 때문이고 다른 사람의 실패 또한 오직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믿음은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당연히 보아야 할 수많은 사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필자는 문화심리학자로서, 한국인들의 높은 자기가치감의 긍정적인 측면을 꾸준히 언급해 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가 이뤄낸 성취는 한국인들이 끊임없이 더 나은 삶을 추구해 온 결과였다. 개인적 수준에서도 마찬가지다. 높은 자존감과 적절한 수준의 긍정적 환상은 정신건강에 실제로 도움이 되며, 좌절과 실패에서 자신을 스스로 일으킬 탄력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내용을 지나치게 믿는 것은 망상이다. 망상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마저 심각하게 위협하는 심각한 병리적 증상이다. 나는 가치 있는 존재이고, 노력하면 충분히 성공할 만한 사람이라는 믿음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믿음이 내가 다른 이들보다 항상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나보다 더 성공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세상이 잘못되었거나 내가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mind

※ 내 삶의 심리학 mind는 「실패연구소」와 공동기획으로 '실패의 심리학' 전문가 칼럼을 연재한다. 학습 및 동기, 임상 및 상담, 사회 및 문화, 산업 및 조직 등 여러 분야의 심리학 전문가로부터 실패 관련 현상을 폭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과 다양한 시각을 전한다. 본 원고는 KIAST 실패연구소 뉴스레터 2023년 9월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https://caf.kaist.ac.kr/boards/view/board_newsletter/699)

한민 심리학 작가 사회및문화심리 Ph.D.
토종 문화심리학자(멸종위기종),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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