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 정체성은 어떻게 발달할까? (3) 아동 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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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 정체성은 어떻게 발달할까? (3) 아동 중기
  • 2020.04.10 08:00
정신분석학자이자 발달 이론가인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을 소개한다.

이 글은 Erikson, E. (1968). Identity: Youth and crisis,New York: Norton. 의 제3장 The life cycle: Epigenesis of identity  가운데 '아동 중기' 부분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아동 중기와 주도성의 발달

자율성이 확립되고 나면 아동은 이제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정하게 된다.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 가장 크게, 그리고 깊이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부모를 비롯한 양육자이다. ‘양육자는 아동에게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존재다. 아동이 때때로 양육자가 비합리적이고, 불편하거나 두렵다고 느끼고 있더라도 그렇다’(p. 115).

아동은 자라면서 더 자유롭고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고, 전보다 큰 목표를 세우며 이루고 싶어 한다. 언어 능력도 더욱 발달해 계속해서 수많은 질문을 하지만, 아직 듣는 능력은 약하다. 이렇게 운동과 언어 능력이 발전하면서 아동은 내가 나중에 자라서 할 수 있는 수많은 역할을 상상할 수 있게 되는 동시에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겁을 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한 인간으로서 주도성을 발달시킬 필요가 있고, 이러한 주도성이 현실감 있는 목표를 세우는 기반이 된다.

그렇다면 주도성은 어떻게 발달할까? 이 시기에도 발달의 규준은 이전 시기와 같다. 새로운 소외와 위기가 오고, 다시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다. 아이는 애정을 보다 잘 표현하고, 느긋해지고, 판단력이 더 명석해진다. 다시 말해 새로운 방식으로 생명력을 표현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패하더라도 금방 다시 일어나 새로운 영역에 접근할 수 있는 용기와 에너지가 늘어 간다.

우리는 지금 만 3세의 끝에 다다르고 있다. 이제 아이는 걷고 뛰는데 익숙해져서 힘차게 움직일 수 있다. 이는 이제 걷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지 않아도 걸으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이는 이제 두 다리를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고,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어른들과 비슷하게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비교를 할 수 있게 되어 지치지 않는 호기심으로 사물의 크기와 종류의 차이를 탐색하며, 특히 성과 연령의 차이에 민감하다. 아이는 주위 어른들을 보면서 미래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상상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가치 있을까를 이해하려고 한다. 유아원, 놀이터, 또래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관계 맺는 방법을 익히는 것도 이 시기이다.

이 시기를 성기기라고 부른다. 이제 마음대로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으며 호기심으로 가득한 아동은 활발한 움직임과 큰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 그리고 주위 환경에 접근한다. 또한 생물학적 성별에 따른 신체의 차이에 대해 궁금해하고 관심을 갖는다(이 또래 아이들은 왜 여자아이에게는 성기가 없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유혹이나 성행위를 흉내 내는 조숙한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으나, 이는 관심이 필요한 예외적인 경우이고 성이란 이상하고 신기하다가도 곧 무섭고 이해할 수 없어 억압하는 경험일 뿐이다. 이 시기는 프로이트가 잠재기라 불렀던, 성적인 성숙의 긴 지연기로 이어진다(다른 동물에게 있어서 이 시기는 성적 성숙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아동은 보호자의 역할에 자신을 대입해 먼 미래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되는 것을 상상해 보려 하지만, 이제는 부모가 되면 배우자와 성적 관계를 갖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또는 엘렉트라 컴플렉스)라고 부른 미신적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아이가 사랑하는 이성의 부모에게 이미 동성 부모라는 배우자가 있음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겉으로 볼 때는 동성 부모에게 일종의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이제는 자신이 성적으로 아직 미숙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고, 그런 자신이 동성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는 것에 가깝다.

여아들은 이 시기에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자신의 운동능력, 정신능력, 사회적 능력이 남아들과 마찬가지로 왕성하지만 남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많은 문화와 계급에서는) 남근이 특권과 같이 여겨지는 것도 느끼게 된다. 남아들은 자신이 성인 남성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남근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여아들은 성기나 젖가슴이 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기가 어렵다. 성교나 임신에 대한 상상은 아직 너무 두려운 것이기 때문에, 엄마가 되고 싶은 추동은 소꿉놀이나 아기 돌보기 놀이에서 나타난다. 한편 남아들은 집 밖에서는 놀이와 주어진 과업을 잘할 수 있는 반면 가정에서는 엄마나 누나를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불편감을 느낄 수 있다. 또 반대로 엄마나 누나가 남자아이는 불쾌한 장난꾸러기라고 느끼게 만들 수도 있다.

사회의 경제적 필요, 그리고 단순성으로 인해 남성과 여성의 역할, 거기에 대해 주어지는 보상, 권력은 명확하게 정해진다. 따라서 성차를 인식하고 불안을 느끼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문화적 성 역할 구분에 따르려고 하게 된다. 남아와 여아 모두 엄마나 아빠처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차근차근 반복적으로 해 주는 성교육이 필요하다(p. 118~119).

 

이 시기는 놀이의 시기이기도 하다. 또래 친구들과 집단을 이루어 충돌하기도 하고 마음을 끌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면서, 목적의 추구, 경쟁, 정복의 기쁨을 맛보는 것은 이 시기의 중요한 과업이다. 남성성 혹은 여성성의 발달을 위한 초석이 쌓이고, 미래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부분인 성적인 자기개념이 발달한다.

그러나 급격히 발달한 운동능력과 상상력은 막연하면서도 두려운, 비밀스러운 환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죄책감이 깨어난다. 이는 이상한 것인데 이성 부모와 성적 관계를 맺는 이러한 환상은 실제로 저지른 일도 아니며,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여기서 이성 부모와 성적 관계를 맺는 환상은 성에 대한 인식이 생긴 아동이 자신과 애정 어린 관계를 맺은 첫 번째 상대인 부모가 이성임을 알게 되고, 부모의 역할을 하는 상상을 해 본다는 의미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시기의 아동은 성적인 지연기에 있으며 성인과는 다르다).

최악의 경우 주도성을 위한 아동의 투쟁은 경쟁 상대(이성 부모)를 따돌리려 하고 질투 어린 분노를 표현하거나, 어린 형제자매를 괴롭히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아니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아동이 자신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경쟁심을 느낄 수도 있다. 이는 자신보다 우월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가진 특권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알려는 분노에 찬, 그러나 별 효과는 없는 시도’(p. 119), 부모 중 한 명의 위치를 시험해 보려는 것으로 정점에 다다른다.

피할 수 없으며, 또 한편으로 필요하기도 한 필연적인 실패는 죄책감과 불안으로 이어진다. 아동은 거인, 호랑이처럼 아주 힘센 존재가 되는 환상을 갖지만, 꿈속에서는 공포에 질려 목숨을 걸고 도망친다. 이 시기는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깨닫는 시기인 동시에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시기, 거세 불안의 시기인 것이다.

주도성의 큰 원천은 의식(conscience)이다. 아동은 이제 잘못된 행동을 남에게 들키는 것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비판하는 내적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이것이 바로 초자아이다. 초자아의 발달은 아동에게 새롭고 강력한 소외이면서 도덕성 발달의 초석이다. 그러나 에릭슨에 따르면, 생명력 있는 성격이 잘 발달하려면 어른들이 초자아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오히려 마음과 도덕성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아동은 성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을 과도하게 억제하고 복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부모가 아동에게 가르치는 대로 살지 않는 경우, 아동은 이를 느낄 수 있고 심각한 퇴행과 부모에 대한 분노가 나타날 수 있다. 에릭슨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인생에서 가장 깊은 갈등 중 하나가 (스스로 강조한 규칙을 지키지 않는) 부모에 대한 증오로 인해 일어난다. 이 경우 아동은 부모가 의식의 집행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동이 견뎌낼 수 없는 내적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낀다. 따라서 아동은 중요한 것은 도덕이나 선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되는 초자아에 대한 의심과 경직성, 회피성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도덕성은 이를 벗어나는 사람에 대한 보복, 복수, 그리고 타인에 대한 억압과 동의어가 되고 만다(p. 119~120).

이 모든 것은 사실 매우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아동의 능력과 희망에 대한 논의만큼이나 갈등과 불안, 공포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다. 에릭슨에 따르면 이 시기의 갈등과 불안을 일시적으로 감출 수는 있으나, 나중에는 터져 나올 기회만을 기다리는 내적인 무기고, 파괴적인 추동의 원천이 될 수 있’(p. 120)으며, ‘아동기의 현상을 간과하고 과소평가한다면 인간의 불안과 갈등의 영원한 원천을 알지 못하게’(p. 120) 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주도성에 대한 해결하지 못한 갈등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구속이 되어 능력, 감정,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성적 부전이나 불감증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아니면 일종의 과잉보상으로 쉬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성취하려 할 수도 있다.

많은 성인들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가치는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느끼고, 현재 자신 그대로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신체도 구속받게 된다. 몸은 말하자면 항상 발진 대기 상태이고, 쉬는 시간에도 엔진을 끄지 못한다. 이는 우리 시대의 심리적, 신체적 질병의 중대한 원인이다. 이는 마치 문화가 자신을 과대광고하고, 거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며, 병에 걸리기 전까지는 한계를 모르는 사람을 만드는 것 같다(p. 120).

그렇다면 이 중요한 시기에 아동이 건강한 주도성을 발달시킬 수 있게 도와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의 삶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좋다. 물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 줄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아이들은 이러한 대화를 매우 좋아하고, 이를 통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운다. 또한 그림책과 동화책을 읽어 주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역할 모델을 제시해 줄 수 있다.

함께 놀이를 하는 것도 유익하다. 규칙이 있는 게임이나 놀이를 가족이 함께하는 동안 아동은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과 참을성을 배울 수 있다. 가정은 이성 부모나 형제자매와 신경전을 하며 죄책감과 갈등을 느끼는 대신 주도성을 개발하는 장이 된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사이에 일종의 동료애가 발달할 수도 있다. 에릭슨에 따르면 이러한 동료애는 부모자녀 사이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서도 보물이다. 숨겨진 경쟁심과 갈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p. 121).

대화와 놀이로 쌓은 가족들의 유대를 통해 아동은 강하지만 지나치지는 않은 의식과 죄책감을 통합할 수 있다. 그리고 언어도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성기기의 위기를 잘 극복하면 융통성 있으면서도 확실한 도덕적 감각이 발달하며, 유아기의 막연한 꿈은 문화 속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다양한 목표가 된다.

이제 우리는 프로이트가 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인간이 겪는 갈등의 중심에 놓았는지를 알 수 있다. 성기기의 중요성은 정신의학뿐만 아니라 고전으로 남아 있는 세계의 문학과 역사에서도 나타난다. ‘사회적 인간은 놀이하는 아동에서 출발하며, 가장 높은 수준의 목표를 추구할 때도 우리에게는 역할 놀이의 흔적이 남아 있다’(p. 121).

이후의 정체성 발달에 있어 주도성 단계의 빠뜨릴 수 없는 공헌은 과업에 대한 목적의식을 주고, 따라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죄책감에 꺾이지 않고 차근차근 성장하여 단단하게 확립된 아동의 목표는 미래의 진로를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분명 이 시기의 이상과 이후 청소년기의 현실 사이에서 괴리를 느낄 경우 실망으로 인해 죄책감과 폭력이 나타날 수 있고, 이는 존재에 큰 위협이 될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이 시기의 발달 단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러하다.

"'나'‘내가 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I am what I can imagine I will be)."  mind

(다음 편에서 아동 후기로 이어집니다)

신기원 중앙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수료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사회 및 문화심리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위험지각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내용과 형식이 아름다운 심리학 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꿈은 나와 우리가 함께 행복한 삶의 길을 찾는 심리학에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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